러시아에서 본 양복차림의 노숙자


저는 199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러시아 생.페테르부르크에 연주여행을 갔었습니다.

그 당시 러시아는 고르바쵸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 개혁 이후 공산정책이 거의 무너진 상태였고

날이면 날마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불과 1-2년 사이에 물가가 10배나 오르는 놀라운 사회적 변화가 일었습니다.

실업자가 속출하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으며 대졸출신의 여성들이 길거리에 나와 자신을 성(性)상품화 했습니다.


92년 7월, 한 달 밖에 머물지 않았던 저까지도 마음이 불안해지는 이상한 때였지요.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살다가 러시아의 광활한 자연을 보니 참 신기하더군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고 동네마다 널찍하고 아름다운 공원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무며 동물이며 모든 게 어찌 그렇게 크던지...

기골이 장대한 북유럽 사람들답게 문화, 예술 또한 스케일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산책을 하곤 했는데요,

하루는 숙소 근처의 어느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때였습니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산책을 하다가 어느 벤치에 앉았습니다.

벤치가 나란히 세 개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 중 가운데에 앉았고 친구가 멀리 서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 옆으로 왔습니다.

친구를 향해서 얼굴을 돌려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옆 쪽 벤치에 앉은 중년의 러시아 남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양복 차림이었고 중절모에 지팡이까지 갖춘 신사였습니다.

깡마른 체구와 큰 키의 신사는 무척 품위가 넘치는 몸가짐을 지녔고 매우 자상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 남성이 걸친 옷차림이었습니다.

분명 양복이었지만 때가 꼬질꼬질, 주름이 주글주글 한다가 꼬릿한 냄새까지 살살 풍기는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엔 기풍도 당당한, 큼직한 저먼 쉐퍼드 한 마리가 딱~~


그 러시아 남성은 아마도 경제적 위기가 닥치자 실직을 하게 되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재산도 집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된 듯 합니다.

걸치고 있던 양복은 마치 그 옷을 입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밤이나 낮이나 단 한 번도 벗지 않은듯 했고요.

아마 양복을 착용한지 수 년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형편에 개는 왜 키울까 궁금해졌습니다.

자기 입 하나 보존하기도 힘든 판국에 개 먹이는 어떻게 구할까 싶더군요.


그 후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해외로 나와서 지금까지,

한국을 떠난 후 15년 동안 유럽의 노숙자들을 무지 많이 봐 왔습니다만 항상 노숙자들은 개와 함께 있었습니다.

노숙자들은 일반인들보다 특별히 동물을 더 사랑하는 걸까요?












다들 하나같이 개를 데리고 있죠?




자발적 빈곤층이 속출하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


미국 NBC 방송에서는 얼마 전 자발적으로 빈곤층이 되려고 결심한 사람들을 특집으로 보도했습니다.

미국 오리건주 근처 한 마을, 댄 프라이스라는 56세의 남성은 목초지 위에 나무 토막들로 지은 작은 굴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그곳을 '호빗 굴'이라고 부른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키가 작은 종족의 거주지에 빗댄 것이라고 합니다.

토지 임대료는 한 달에 100달러 정도입니다. 

다른 이들 눈에는 누추한 거처이지만 프라이스는 '이곳이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식사는 시리얼로 한다는군요. 냉장고가 없어서 우유를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시리얼에 물을 부어 먹습니다.

생계 유지는 비정기적으로 생기는 허드렛일을 하거나 황무지의 삶을 다룬 작은 책자를 만들어 팔아서 충당합니다.

이 책에 언급해 주는 조건으로 스폰서들에게 옷이나 음식을 받기도 한다네요.

그가 한 해 쓰는 생활비는 5천 달러 정도랍니다.


전도 유망한 사진기자였던 프라이스는 23년 전 이혼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이런 생활을 시작했다는군요.

그는 "높은 대출 이자, 자동차 할부금 등 끝없이 날아오는 고지서에 질려 <단순한 삶>을 선택했다." 며 

"집 대출을 갚느라 뼈빠지게 일만 하고 결과적으로 그 집에서는 오래 지내지도 못하는 것만큼 정신 나간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프라이스와 같이 자발적으로 빈곤을 선택하는 미국인들이 많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끝없는 소비의 악순환에 질린 이들도 있고 경기 부진을 계기로 황금 만능주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노숙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의도적 빈곤층(Intentional poor)"라고 합니다.

이들은 물질을 넘어서는 진짜 현실을 추구하며 삶을 살아간다고 하네요.


자발적으로 노숙자가 되었건, 어쩔 수 없이 노숙자가 되었건,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를 데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왜 개를 데리고 있을까요?


추측 하나!

인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충성스러운 심복으로서, 외롭고 슬픈 노숙자들에게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추측 둘!

추운 겨울에 개와 살을 맞대고 있어야 얼어죽지 않기 때문이다.


추측 셋!

신변 보호를 위해서이다.


여러분은 셋 중 어느 쪽인 것 같습니까?

셋 중 하나만 선택하시겠어요? 아니면 셋 다?


하지만 정답은 셋 다 땡!! 입니다.   헐;;;; 안돼   ~~ ㅠㅠ;;


저는,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겨울철 추운 날씨에 얼어 죽지 않으려면 꼭 개를 데리고 있어야 하나보다 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숙자님들'께서 개를 데리고 있는 결정적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그럼 왜 개를 데리고 있을까요?

정답은...



개를 데리고 있어야 도시에서 추방되지 않는다?


노숙자들이 길거리에 뒹굴고 있으면 어김 없이 경찰이 나타납니다.

유럽에는 노숙자들을 정리(?)하기 위해 1955년부터 BAPSA 라고 하는 특별 경찰이 만들어져있거든요.

행패를 부리거나 노상방뇨를 하거나 고성방가를 할 경우는 어김 없이 단속 들어오고요,

그렇지 않고 얌전하게 있어도 꼭 경찰이 나타나서 단속을 합니다.

그런데 개가 있으면 그 노숙자를 추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상력 풍부한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함부로 추방할 수 없는 법조항이 있나보다' 라고요.

마치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아무리 집세가 밀려도 주인이 쫓아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저의 상상도 여지없이 틀려버렸습니다.



노숙자가 개를 데리고 있을 때 추방하지 못하는 기함할 이유는?


바로!!

노숙자를 추방하거나 체포하면 개를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쉽사리 추방하거나 체포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개를 따로 수용할 만한 시설이나 기관이 없기 때문이라네요.



노숙자가 사람대접 받으려면 개를 꼭 데리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유럽사회는 사람의 '인권'보다 개의 '견권'이 더 중요한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 같은 느낌,

이 느낌은 뭘까요?





"숙자야!! 난 니가 노숙을 하면서 개를 안 데리고 올 줄은 몰랐어!!!"






너무 의외라고 생각되신다면  추천 한 방 날려 주세효~~~







<사라와 함께 떠나는 아프리카 사파리>를

한RSS로 구독해 주세요~~!! ---->





+ 구독 누르셔서 재미있고 기상천외한 볼거리, 읽을거리, 문화충격을 접하세요~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